비트코인 현물 ETF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미 증시에 상장된 뒤 비트코인은 23일 5300만원대까지 폭락했다. 불과 12일 만에 연중 최고점 대비 1200만원이 빠진 것이다. 하락률로는 약 20%에 달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5만달러를 넘봤지만, 현재는 4만달러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하면 투자금이 대거 유입될 것이란 기대가 많았다.
스탠다드차타드(SC)는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뒤 최대 1000억달러가 시장에 흘러들어올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2004년 금 현물 ETF가 승인된 뒤 약 1000억달러 이상 시장에 투자금이 몰려든 사실도 언급됐다. 가상자산 운용사 비트와이즈가 최근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비트코인 투자 의사가 있는 금융 자문가 중 88%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후 투자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상장 후 기관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하락세에 힘이 실렸다. 또 그레이스케일의 ETF 수수료가 비싼 탓에 ‘갈아타기’ 물량도 나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레이스케일의 수수료는 1.5%로, 블랙록(0.3%) 등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파산이 결정된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보유 중인 그레이스케일 물량이 전량 처분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레이스케일이 GBTC를 상장한 후 일주일간 28억달러(약 3조7500억원) 규모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반대로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후 ETF의 순유입액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총순유입액은 현재까지 8억2400만달러(약 1조1000억원)로 자금 유입이 정체된 모습이다. 에릭 발추나스 블룸버그 애널리스트는 “GBTC의 자본 유출은 완화되고 있지만 타사 9개 비트코인 현물 ETF의 자본 유입량도 줄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25일에는 미국 법무부까지 압수한 비트코인 1억1170만달러어치를 매각하겠다는 공지를 냈다.
낙관론자들은 오는 4월 예정된 ‘반감기’에 주목하고 있다. 반감기는 비트코인 채굴에 대한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기를 의미한다. 공급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수요만 유지되면 가격이 오를 것이란 기대다. 마이클 반 데 포페 가상자산 애널리스트는 “박스권 저점은 3만6000~3만9000달러”라며 “여기서부터 반감기까지의 상승 모멘텀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약세가 지속될 것이란 시각도 만만치 않다. 도이체방크 리서치가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후 시행한 설문에 따르면 미국·유럽 투자자 가운데 3분의 1은 올해 말 비트코인 가격이 2만달러 선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마리온 라부 도이체방크 연구원은 “투자자의 3분의 2는 디지털 자산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상자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한편 지난해 비트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의 신규 이용자들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블록체인 데이터 플랫폼 플립사이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폴리곤 등 주요 8개의 블록체인에 약 6200만명의 신규 이용자들이 유입됐다. 이더리움이 지난해 1540만명의 신규 유저를 유입시키면서 가장 많은 유입세를 보였다. 이어 폴리곤(1524만명), 비트코인(1065만명) 순이었다. 보고서는 “실리콘밸리 은행 붕괴 이후인 지난해 3월부터 이용자 증가세가 두드러졌다”며 “중앙 집중화된 금융 서비스 신뢰가 하락하면서 블록체인 수요가 몰렸다”고 분석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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